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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토리

네플릭스 "악연" 리뷰 (스포줄거리없음)

by 키튼야옹님의 블로그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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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선 작가의 공포/스릴러 웹툰인 '악연'은 카카오 웹툰에 연재되었는데요

6부작으로 악연으로 얽히고 설킨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네플릭스 범죄 스릴러 드라마입니다.

박해수, 신민아, 이희준, 김성균, 이광수, 공승연등이 출연합니다.

사채를 끌어들여 코인에 투자했지만 빚더미에 앉은 소재가 극의 출발이고 악의 시작입니다.



"악은 얼마나 성실한가 – 악연에 대하여"

 




우리는 종종 '성실함'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만 여깁니다.

꾸준히, 변함없이, 정직하게 이어지는 무언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끈질기고 성실한 존재 중 하나는 바로 '악'입니다. 특히, 우리가 끊어내지 못한 '악연'은 말할 수 없이 성실합니다.

악연은 무너지지 않는다.



좋은 인연은 사소한 오해에도 깨질 수 있다. 감정 하나 어긋나면 연락이 끊기고, 마음이 멀어지면 다시 이어지기 어렵다. 하지만 악연은 다르다. 어떤 오해도, 어떤 싸움도 그것을 끊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왜일까?

악연은 이해나 공감 위에 놓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대도, 존중도 없기에 상처받을 일도 없다. 서로를 이용하거나 조종하거나, 때로는 미워하면서도 끈질기게 이어진다. 마치 독성 있는 뿌리가 바위 틈새를 비집고 자라듯, 악연은 그렇게 성실하게 자라난다.



악은 게으르지 않다


악한 감정은 지치지 않는다. 원한, 질투, 분노, 비교심은 사람을 소모시키지만, 정작 그 감정 자체는 지치지 않고 충실히 제 자리를 지킨다. 마치 잠들지 않는 불씨처럼, 어렴풋한 자극에도 다시 타오른다.

생각해보면, 선한 감정은 훈련과 의지를 필요로 한다. 용서도, 사랑도, 배려도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악은 본능에서 출발한다. 훈련하지 않아도, 방심하는 순간 스며들고, 계속해서 자리를 차지한다.

악연은 왜 끊기 힘든가



가장 큰 이유는 익숙함이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관계에서도 이상하게 익숙함을 느낀다. "그 사람이 그래도 나를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같은 착각 속에 머무르거나, "그래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니까"라는 이유로 끝맺음을 미룬다.

하지만 기억하자. 시간이 오래됐다는 이유로 상처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악연은 시간이 갈수록 당신을 더욱 갉아먹는다. 그들의 성실함에 당신의 인생을 맡길 필요는 없다.



악보다 더 성실해야 한다




악연을 끊기 위해선 단호함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보다 더 성실해야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한 결심, 회복을 위한 노력, 건강한 관계를 향한 갈망이 악보다 더 끈질겨야 한다.

세상에 성실한 악이 있다면, 우리는 더 성실한 선으로 맞서야 한다. 결국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은, 누구의 성실함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


착함은 지혜와 함께 갈 때 빛난다

진짜 착한 사람은 상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진짜 배려는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다.
진짜 선함은 어리석음과 구별된다.

착하기로 작정했다면, 지혜롭고 단단한 착함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악보다 더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








왜 착함이 악을 불러오는가



– 선의가 악을 끌어들이는 심리학적 진실

착하게 살면 착한 일이 돌아올 거라 믿는다.
선하게 대하면 언젠가는 그 진심이 통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하다.
가장 먼저 상처받는 건 늘, 착한 사람이다.

왜 그럴까? 왜 착함이 오히려 악을 불러오는 결과로 이어지는 걸까?





1. 경계 없는 착함은 먹잇감의 신호다


세상엔 늘 상대를 테스트하는 사람이 있다.
한번 밀어보고, 한번 이용해보고, 반응을 본다.
그때 “괜찮아요”, “제가 참을게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 순간부터 '이용 가능한 사람' 리스트에 등록된다.

착함은 경계가 없을 때, 약점이 된다.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거절을 두려워하는 착함은
악의 입장에서 보면 공격하기 가장 안전한 목표물'이다.

2. 선의는 오해받기 쉽다


나이브한 착한 사람들은 선한 의도로 돕고, 참는다.
하지만 그 선의가 ‘자발적 희생’으로 오해받을 때가 많다.
“쟤는 원래 그런 애야”라는 인식은,
곧 그 사람의 고통을 무시해도 된다는 허가장이 된다.

결국 선의가 선의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악의는 죄책감 없이 그 위에 올라선다.

3. 착한 사람은 자기방어를 못한다



악한 사람은 공격할 준비가 되어있고,
착한 사람은 참을 준비가 되어있다.
이 불균형은 지속적으로 악을 강화하는 구조를 만든다.

"그래도 내가 참는 게 낫지",
"내가 싸우면 나도 똑같아지잖아"
라는 생각은 결국,
악의 성장을 묵인하는 '무의식적 동조'가 된다.

4. 악은 착한 사람을 통해 증폭된다


세상의 악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
항상 침묵하는 선, 방임하는 착함, 회피하는 선의를 발판 삼아 커진다.
악한 사람보다 더 무서운 건,
선한 사람의 무력함이다.

히틀러보다 무서운 건,
그를 방관한 수많은 '착한 시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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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어떤 착함을 선택해야 하는가?


지혜 없는 착함은 무능이고, 경계 없는 선의는 자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착함은

말할 수 있는 착함,

거절할 수 있는 선함,

악을 구분할 줄 아는 선의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강한 착함'을 선택하는 것.
그게 오늘날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미덕이다.






네플릭스 스릴러 악연에서도  악인은 반성이 없습니다. 나이브한 착한 피해자는 악연을  끌어옵니다.

이 스리러를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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